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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Ravi Pinisetti

COLUMN

나성인 교무의 마음공부 이야기

성주(聖呪)




요즘 들어 자주 지인들로부터 부고 소식을 듣습니다. 멀리 한국에서 지인들의 부모님께서 한 분 한 분 타계하시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직접 가보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이제 가깝게 내 일로 다가와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납니다. 그리 멀지 않은 시일에 “내 어머니도 떠나시겠구나!”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떠오르는 글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주(聖呪)입니다.


‘성주(聖呪)’란 성스러운 주문이라는 뜻으로, “영천영지 영보장생(永天永地 永保長生) 만세멸도 상독로(萬世滅度 常獨露) 거래각도 무궁화(去來覺道 無窮花) 보보일체 대성경(步步一切 大聖經)” 입니다.


성주(聖呪)는 원불교에서 고인을 위한 천도재나 기도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주문입니다. 주문은 원래 진리를 나타내는 말로써, 일심을 집중해서 독송하여 심력과 위력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대종사는 청년이나 일반대중을 위해 자주 성주(聖呪)의 의미를 설하시며, 불생불멸의 진리와 생멸거래와 인과의 이치를 깨달아 마음의 자유를 얻고 전 인류에게 복과 지혜의 문을 열어 주는 큰 사람이 되도록 당부하셨습니다.



- 소태산 대종사의 친필 -



영천영지 영보장생(永天永地 永保長生)


하늘과 땅이 영원하므로 그 속에 사는 모든 만물이 영원히 장생을 보존한다는 의미입니다. 곧 이 구절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를 나타내며, 불생불멸의 진리가 있기 때문에 만물이 영원히 멸하지 않으며 우리도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만세멸도 상독로(萬世滅度 常獨露)


만세에 멸도가 되더라도, 항상 홀로 드러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나의 진체(眞體)입니다. 비록 육신은 생멸하지만, 한 물건인 영식은 멸하지 않고 수십 생을 반복해서 윤회한다해도 나의 진체는 항상 홀로 드러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조물주이니 참 주인공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원불교 5대 종법사인 경산상사는 “우리가 수행정진한다, 선(명상)을 한다, 하는 것이 다 멸도공부인데, 이것은 빗자루와 걸레로 깨끗이 청소하는 것과 같다. 염불 빗자루로 거친 번뇌를 쓸어내고, 선의 걸레로 미세 번뇌까지 깨끗이 닦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늘 쓸고 닦고 쓸고 닦고 해서 마음이 청정일념이 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래각도 무궁화(去來覺道 無窮花)


가고 오는 도를 깨쳐서 무궁한 꽃이라. 원불교 3대 종법사인 대산종사는 “생사는 거래요. 인과는 여수”라고 하셨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가고 오는 것이며, 원인과 결과는 주고받는 것입니다. 생사거래의 이치를 깨고 보면 불생불멸의 진리와 함께 생사와 인과가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마치 영원히 피고 지는 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보보일체 대성경(步步一切 大聖經)


걸음걸음 일체가 모두 다 성경현전이라. 깨달은 눈으로 바라보니 세상만사가 다 살아있는 경전이라는 뜻입니다. 생사거래와 인과여수의 이치가 무궁한 꽃과 같음을 깨치고 보면 이 세상 만물의 모든 이치가 큰 경전으로 보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생사윤회에 해탈을 얻음과 동시에 큰 위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주는 고인의 해탈 천도를 위해 많이 독송되지만 또한 누구든지 일심으로 독송하면 불생불멸의 진리를 깨쳐 영생(永生)을 얻고 생사윤회에 해탈을 얻음과 동시에 큰 위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성주(聖呪)는 글자그대로 성자가 되는 주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옥문 입구에는 “어서오세요.”하고 유혹하는 문지기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지옥에 갈까요. 바로 욕심과 집착 때문에 오라고 하지 않아도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극락문 앞에도 “오지마세요.”하고 밀어내는 문지기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못 들어갈까요. 욕심과 집착에 걸려있어서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청정한 한 마음이 곧 극락’ 이라고 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늘 내 마음에 공을 들이고, 깨어있는 삶으로 바른 판단과 선택을 하면 그 순간순간이 모여 영원한 세계를 이룹니다. 내 마음에 공을 들이는 삶이 바로 이 세상에 펼쳐진 경전과 걸음걸음 함께 하는 삶입니다.


4/7/2023


나성인 교무, 휴스턴 교당


코리아월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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